[기고]일본 '가나가와네트워크운동'을 방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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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일본 '가나가와네트워크운동'을 방문하다
  • 윤승걸
  • 승인 2018.02.06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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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의 동력은 실감이다!"

 ‘블루라이트 요코하마’ 요코하마의 밤거리는 유명하다. 요코하마 역 주변은 화려한 야경을 보러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또 다른 한편으로 요코하마는 도쿄의 베드타운으로 젊은 층이 많은 곳이다. 이 휘황찬란한 요코하마 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주택가가 즐비하게 나타난다. 가나가와네트워크운동(이하: 네트운동)은 이런 지역적 특성을 배경으로 시작되었다. 1980년 학교 합성세제추방운동을 시작으로 ‘생활정치’ ‘대리인 운동’을 내걸며 지역정치에 참여했다. 지금까지 지방의회의 시의원을 배출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2018년 1월 16일 필자는 요코하마 시내의 한 빌딩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네트운동이 주관하는 시민사회 챌린지기금 행사가 있었다. 행사장에는 시민단체 활동가 약100여명이 참석했으며 각자의 활동을 발표했다. 행사 후 네트운동 관계자와 인터뷰를 실시했다. 조촐한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공적인 일은 함께 움직인다는 원칙으로 3명이 참석했다. 과거-현재-미래의 권력(?)이 하나의 팀으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였다.

왼쪽 위는 요시노 씨, 왼쪽 아래는 와카바야시 사무국장, 오른쪽 아래는 아오키 시의원, 오른쪽 위는 필자(박재호)다.

인터뷰는 와카바야시 토모코 사무국장(전 요코하마시의원), 아오키 마키 요코하마시의원, 요시코 카요코 씨(스탭)를 대상으로 실시했다.

Q: 네트운동은 지역자치의 모델로서 한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와카바야시: 그런가? 우리도 몰랐다.(웃음) 한국과 교류가 많다. 나는 마포와 전북 부안군에 갔었다. 현 청와대 인사수석인 조현옥 씨가 서울시에서 일할 당시, 네트운동 사무국을 방문했었다.

시민사회 챌린지 기금 행사 장면

Q: 오늘은 무슨 행사인가?

와카바야시: 시민사회 챌린지기금은 2001년 처음 시작했다. 매년 2회 행사가 있으며, 벌써 17년째이다. 지금까지 약8천엔(8억원)을 모금했다. 가나가와현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는 물론 도쿄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 노동조합, 연구자들도 함께 한다. 각자의 활동을 소개하고 공유하며 시민활동의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각자 모금활동도 한다.

Q: 오늘 발표한 에너지 캠페인을 설명해달라

와카바야시: 최근 탈원전 운동을 하고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에도 일본은 원전을 가동하고 있다. 자민당은 원전 가동은 그만두지 않는다. 일본은 전력 자유화가 진행되었는데, 오늘 참여한 전력회사에서는 태양열,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중소기업이라서 도쿄전력에 비해서 전기료는 비싸다. 하지만 탈원전 활동의 일환으로 비싼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

Q: 네트운동을 어떤 계기로 시작되었나?

와카바야시: 1980년대 학교 합성세제추방운동에서 시작했다. 인체 유해물질이 아이들의 건강을 위협하지만, 당시 시의회는 모두 남성들뿐이라 어머니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그래서 여성이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활정치’와 ‘대리인 운동’을 내걸고 네트운동을 결성했다.

Q: 그 이후 활동을 듣고 싶다.

와카바야시: 우리의 밀접한 생활을 의제화시키며 운동을 전개했다. 환경문제, 보육, 장애인,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중심 의제였다. 2000년대는 주로 보육관련 활동이 전개되었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여성의 사회참가비율이 높아졌지만, 여성이 활동하기는 열악한 조건이였다. 2001년 국가가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실시하면서 우리도 서비스 사업을 시작했으며, 2010년쯤부터 청년정책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자녀들이 자라나면서 자연스럽게 청년문제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점점 취업의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이 증가했으며, 니트나 히키코모리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현재 취업지원, 생활곤궁자 지원 및 상담을 하고 있다.

Q: 네트운동도 30년이 지났다. 그동안 시행착오도 있을 것 같다.

와카바야시: 네트운동을 하면서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내부 구성원간 갈등도 있었으며 활동가들이 지치기도 했다. 운동의 방향에 대한 의구심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학습할 수 있었다. 시민의 니즈를 찾고 반영하려 운동을 했다. 꾸준히 변화했기 때문에 운동이 지속되었다. 지금은 “만들고 변화시키자!”가 운동의 방향이다.

Q: 네트운동은 각 지역마다 의원을 배출했지만, 각 지역의회에서는 1~2명뿐이다.(현재 네트소속 의원 17명) 여전히 마이너리티인데 의정활동의 어려움은 없었나?

아오키: 현재 요코마마 시의회에서 네트소속은 저 혼자이다. 혼자라서 고립될 위험이 있다. 그래서 지역의 시민단체와 연계를 위해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시민들이 크게 목소리를 내어야 의회에 반영할 수 있다.(웃음) 단순히 반대운동만이 아니라 대안을 마련하기 때문에 시민들의 정책이 의회에 반영될 수 있다.

Q: 대안을 제시하는 운동?

와카바야시: 아마 1990년대후반쯤이라 생각한다. 네트운동이 반대운동에서 대안을 제시하는 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반대운동만으로는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역부족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반대운동만으로는 운동의 동력이 떨어졌다. 지금은 A가 안되면 B가 있다는 제안하는 방식이다. 하나의 사안이 생기면 소속 의원과 단체, 이해관계자들이 연구회를 만든다. 연구회에서 다른 단체나 연구자들로부터 자문을 받고, 조사연구를 실시하여 정책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청년정책사업을 실시하기 위해서 다른 지역의 모델을 연구했다. 연구회에는 지역 국회의원도 찾아온다. 지역민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리인정치는 시민, 제도, 정치가 순환하는 구조이다.

Q: 연구비용은 어떻게 하는가?

아오키: 요코하미시의원의 월급은 97만엔(약970만원)이다. 시의원은 18만엔(180만원)만 수령하고 나머지는 연구조사비로 기부한다. 연구조사비는 NPO단체를 지원하거나 연구회를 꾸리는데 사용한다.

Q: 어떤 계기로 운동의 방향이 전환되는지 자세히 듣고 싶다.

와카바야시: 90년대 후반 리더의 결정인지 내부회의 결과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98년 NPO법(특정비영리법)의 성립과 관련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Q: 지속적으로 활동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운동의 동력은 무엇인가?

와카뱌야시: ‘실감’이다. 시의원의 활동이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회원 및 자원봉사자들은 모두 각 지역에서 NPO단체에 속해 있다. NPO활동을 하다보면 어려움을 느낀다. 그 점을 시의원과 상의하며, 시의원은 예산이나 조례, 연구회를 통해서 지원을 해준다. 자신의 일이 지자체와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참여 동기가 생긴다. 여기 요시노씨도 시민단체활동을 하고 있으며, 시의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요시노: 현재 내가 속한 단체는 4분의 3이 요코하마시 보조금사업으로 운영한다. 나머지 4분의 1은 회원비나 보육료로 충당한다. 일본의 보육 시스템은 열악한데, 그나마 요코하마시가 선진적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인가보육원만이 아니라 NPO단체가 보육사업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아이를 1시간만 맡기며, 1천엔(만원)정도를 요코하마시가 비용을 지불한다.

Q: 보육원은 시에서 건설했는지?

요시노: 개인 집을 활용하여 보육원을 운용하고 있다. 시에서는 임대료지원이 있다.

Q: 자신의 생활과 행정이 별개가 아니라는 인식이 자리 잡은 것 같다.

와카바야시: 맞다. 실천이 제도가 된다! 여성지원, 보육, 개호보험, 청년정책 등 모두 우리 생활과 관련이 있다. 네트운동이 이러한 생활과 밀접한 운동이며, 지자체에서 예산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풀뿌리 민주주의, 주민자치가 실현된다고 본다. 그리고 또 활동 동기는 ‘분노’라 생각한다. 생활에 대한 불만을 네트운동 구성원들과 이야기하고 개선하려 노력한다. 운동, 시의회, 정책 제안, 이해관계자가 조합된 운동이다. 즉 당사자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사회와 정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것이다. 생활을 위해서 정치를 도구로 사용한다.

Q: 의원과 회원 간의 관계는 어떤지?

와카바야시: 의원은 혼자가 아니다. 모두 현장과 연결되어 있다. 모두 역할의 차이만 있을 뿐이며,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선거운동 때도 후보자와 자원봉사자가 같이 행동한다. 후보가 선거운동원에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운동원과 후보가 상의하면서 운동을 한다. 예를 들어, 오늘 후보가 어떤 연설을 해야 하는지를 운동원과 상담하며, 운동원들끼리 일을 배분하고 어떤 이야기를 할지를 결정한다. 여기 스탭으로 요시노 씨를 배석한 것도 바로 정보공유를 위해서이다.

Q: 선거 때 출마자가 돈을 더 쓰지 않나?

와카바야시: 그렇지 않다. 후보의 사비를 사용하는 일은 없다. 단체가 각출하여 선거의 모든 비용을 낸다. 선거운동도 돈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다.

Q: 30여년 활동하면서 세대교대도 있을 것 같다.

아오키: 구성원과 원만한 교류를 위해서 세대교대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의원임기를 2기 8년으로 정했다. 저의 경우, 어머니가 네트운동의 회원이었다. 어머니의 권유로 네트운동에 가입했으며, 활동을 하다 보니 시의원이 되었다.

Q: 후보자를 선정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와카바야시: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상상력’이다. 의원에게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중요하다. 그래야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으며, 그들의 어려움을 공감할 수 있다. 사람들의 생활을 공감해야 정책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또 상상력도 중요하다. 상상력은 개인과 한 집단의 이야기를 듣고 사회구조와 연결시키는 능력이다. 하나의 실마리를 통해서 전체를 읽어야 한다.

Q: 고학력 주부운동이라는 비판도 있다.

와카바야시: 고학력이라면 여기에 있겠는가?(웃음) 회원 중 주부가 다수이지만, 모두 맞벌이가 많다. 남편이 주 수입을 벌고 있다. 여성은 정규직은 적고 파트타임으로 활동하는 비율이 높다. 초기와 비교하면 가족관계도 변화했다. 싱글맘, 비혼 비율도 높아졌다. 특히 싱글여성이 시의원 임기 중 18만엔 월급을 받는데, 향후 생활이 어렵기때문에 의원을 그만둔 후 다른 일을 찾는다.

Q: 마지막 질문이다. 생활정치는 막연한데 어떻게 정의하는가?

아오키: 사람마다 다양하기 때문에 생활의 기준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고민하는 문제가 다른 사람도 고민하다면 공유할 수 있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서 생활을 개선시키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생활 정치는 사회, 환경, 음식, 축제, 대인 관계라 할 수 있다.

글 박재호(일본 유학중인 과천시민)

<에필로그>

인터뷰 도중 “만들고 변화시키자” “운동의 동력은 실감” “후보선정기준은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상상력”이라는 말을 들으며, 그동안 활동의 내공을 느꼈다. 네트운동의 방향도 변모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창립 당시 정당을 표방하지 않고 네트운동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기성 정치와 거리를 두기 위해서였다. 기성 정당의 이익 정치와 거리를 두면서 운동을 전개했으나, 98년 NPO법안 성립 이후 ‘이해관계자’(Stakeholder)형으로 변모했다. 즉 지자체의 사업보조금을 받는 단체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전환한 것이다. 정치가 이익배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네트운동은 운동에서 정치로 변화했다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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