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동화읽는어른모임> 창립 20주년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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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동화읽는어른모임> 창립 20주년에 부쳐
  • 기고 정찬일 작가(모임 1기 회원 남편)
  • 승인 2017.11.10 2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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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도서연구회 과천 지회인 <과천동화읽는어른모임>이 창립 20주년을 맞는다. 중앙회가 있지만 독립해서 운영하는 지역의 시민단체가 20년 간 지속되고 왕성한 활동이 현재진행인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아이를 가진 어른(엄마들이 99%)들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좋은 동화책을 읽어주고 알려주고자 하는 게 이 모임의 목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론 어른들이 먼저 읽어야 했다.

21년 전 생소한 과천에 이사왔을 때 나보다 나를 더 아는 '안방마님'을 비롯한 몇 명의 엄마들이 이 모임을 만들었다, 이른 바 창립회원들이다. 그 당시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잘 모르는 것은 세월의 탓이 아니라 아이들 문제를 아내들의 몫으로 떠밀려는 대한민국 남편의 못된 '관성'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만 그렇지는 않았다. 예외적으로 한 남자는 '우리'와 같지 않아서 이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엄마들 틈바구니에서 궂은 일부터 기획까지 적잖은 일을 했는데, 지금은 원당에 사신다. 보고 싶다.

여튼, 회원들의 열의는 뜨거웠다. 나이도 비슷비슷하고 사는 환경('과천'이라는 곳)도 같고, 무엇보다 아이들이라는 최대공약수의 구심력에다 좋은 동화책이라는 공감대까지 형성하니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장아장 엄마 손따라 나오던, 대학생이 된 두 딸의 첫친구들도 이 모임에서 만났고 이들과는 아직도 절친이다.

2기, 3기, 4기... 기수가 쌓이면서 더욱 풍성해지고 알차졌다. 그리고 자신의 자식만이 아닌 과천의 아이들에게까지 실천하는 공적 영역으로 활동을 넓혔다. 아주 아주 약간 약간 비약해서 말하면 도립도서관과 정보과학도서관의 어린이 활동 및 책, 그리고 각 초등학교 도서관이 활성화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 모임이 결정적 공헌을 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이리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것은 이 모임 덕분에 얻어먹은 게 많아 개인적인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어서이다. 그 중 왕건이는 남편들과의 만남이다. 초창기에는 무슨 행사나 가족이 참여하는 수련회에 쫄래쫄래 아내들 따라온 남편들은 서로가 뻘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만남이 지속되면서 자연스럽게 남편들의 친목도 쌓여 갔다. 좁은 과천에서 자주 마주치고 반갑게 인사했다. 급기야 남편들끼리 따로 만나 술자리 갖기가 다반사였다. 아내들과 만찬자기로 나이와 사는 곳이 비슷한데, 사회에서 하는 일들이 다양해서 얘기거리는 풍부했다. 개순수한 동네 아저씨 모임은 특별한 의제나 고민이 없어 힐링에 적당했고 활력소가 되었다. 남자끼리 모이면 과한 경우가 있으나, 아내들이 시퍼렇게 눈 뜨고 귓날을 쫑끗 세우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단언컨대 배반낭자의 부작용은 한 번도 없었다. 명함을 주고받았지만 이름보다는 누구누구 아빠로 부르는 게 더 편했다. 학교 친구나 직장 또는 단체 동료들에게 동네 사람 만난다고 하면 이해를 못하는 축이 몇 있다. 각박한 수도권 생활에서는 잘 그려지지 않는 풍경을 나름 만끽하는 기분도 색달랐다.

여기서 자라고 친구도 있는 과천은 아이들에겐 당연히 고향이다. 아마 눈 감고도 갈 수 있을 지 모르겠다. 나도 여기가 고향 같이 편한데, 가장 큰 이유는 동네 사람이 있어서이다. 이게 <과천동화읽는어른모임> 덕분이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랴! 이 모임은 나에겐 추억의 창고였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살던 곳이 재건축되면서 그렇게 지내던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는 아쉬움이 부쩍 큰 요즘이다.

동네방네 책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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