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후보를 알고 싶다(상편)] 최기식 후보(국민의 힘) 심층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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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후보를 알고 싶다(상편)] 최기식 후보(국민의 힘) 심층인터뷰
  • 최성범 기자
  • 승인 2024.03.21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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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따뜻한 감성을 가진 울보 검사 출신

오는 4월10일 치러질 22대 총선을 앞두고 지난해 12월 12일 예비후보자 등록, 이후 장기간의 공천 절차에 이어 이제 3월19일부터 선거인 명부 작성, 3월21~22일 이틀간에는 후보자 등록이 시작된다. 총선 일정이 본격 시작된 것이다.

과천 의왕 지역구에선 현역인 이소영 후보(더불어민주당)와 최기식 후보(국민의 힘)가 일찌감치 공천을 확정하고 한판 승부를 펼치게 됐다. 현역 의원으로서 의정활동과 방송을 통해 상당한 인지도를 갖고 있는 이소영 후보와, 18년째 과천 시민이면서 발로 뛰는 서민적 풍모로 대면접촉에 강점을 보이고 있는 최기식 후보와의 대결이다.

과천 시민들의 인터넷 신문 과천넷은 총선에 앞서 시민들의 판단을 돕기 위해 후보자들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게재한다. 인터뷰를 한 순서에 따라 우선 최기식 후보와의 인터뷰를 게재한다.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두 후보에게 거의 동일한 질문이 주어졌다. 

다음은 최 후보와의 일문일답의 내용.

-스스로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주머니 속의 송곳, 재능이 뛰어나거나 능력이 출중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드러나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외유내강형입니다.

-살아온 인생의 과정을 설명해주십시오

▲ 밀양이 고향인 저는 가난한 농부인 아버님 밑에서 자랐습니다.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밭 70평이 전 재산이라 가난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4남 2녀 중 큰형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공장 노동자가 되었고 20살 젊은 나이에 폐인이 되었습니다. 둘째 형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철공소에서 일을 했습니다. 셋째 형은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지방 4년제 대학에 편입을 했습니다. 누나들은 가사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식모살이를 한 것입니다. 셋째 형이 사준 위인전을 읽으며 세상이 넓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큰 세상으로 나가고 싶다는 희망을 키웠습니다.

아버지는 산에서 나무를 하고 내려오시면 항상 어머님에게 밥상을 차리게 했습니다. 어머님은 마을 우물터에서 빨래를 하시다가 가끔 동네 부인네들과 막걸리를 마시고 신세 한탄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부부 싸움을 하셨습니다. 그 작은 마을 주민들이 모두 알 정도였습니다. 언제가 저는 농약을 어머님께 보여주며 “자꾸 술 마시면 나 이 농약을 먹고 죽을거야”라고 겁박을 할 정도로 부모님의 싸움을 말리고 싶었습니다.

그때 생긴 열등감은 대학(고려대 법대) 생활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부모님의 싸움을 보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그럴 때면 교회에 갔습니다. 혼자서 울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깨달은 게 있습니다. 공부였습니다. 제가 공부를 잘하면 부모님이 싸우지 않을 것 같았어요.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밀양 시내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고 자취를 했습니다. 자취 비용은 식모살이 하는 누나들이 도와 주었습니다. 고교 시절 초반엔 생각보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기에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집안의 불화, 성적 고민으로 갈등을 하고 있을 때 셋째 형이 두고 간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길을’라는 고시 합격기를 읽으면서 법대 진학을 결심했습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목표가 생기자 공부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고려대학교 법대에 진학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정불화로 생긴 열등감은 대학 4년 내내 따라 다녔습니다. 어느 날 대학 캠퍼스에서 기도를 하던 중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할 때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고 스스로 성장하고, 앞으로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만 하지 말고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의 고통이 감사함으로 바뀌게 되었고 4학년 때엔 열등감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사법 시험에 합격해 검사가 되었습니다.

-검사 시절의 최 후보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 ​검사라고 하면 대부분 깐깐하고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제 주변의 검사들은 울보가 많았습니다. 저도 울보 검사하였습니다. 형사부에 재직하면서 소년범을 취조할 때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대부분 소년범들은 가정 불화나 결손 가정에서 자란 청소년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 어린 시절과 너무도 유사했습니다. 그래서 법보다는 설득을 통해 합의로 사건을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그 소년범들에게 제가 집안 환경을 말할 때면 저도 울고 소년범도 울었습니다. 그리고 소년범들이 잡혀왔을 때 그 아이들에게 나의 어렸을 때의 그 아픈 이야기들을 들려주면서 그 아이와 엄마가 다시 회복될 수 있도록 같이 울기도 했던 검사였습니다. 그때 생긴 별명이 ‘따뜻한 검사’, ‘울보 검사’였습니다. 주변 지인들은 제 성격과 행적을 보고 민주당에 더 잘 어울린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저는 눈물을 닦아주는 검사였어요. 고소인들 피고소인들 서로 싸우고 원수가 돼 있는 관계들을 회복시키기 위해 화해시키기 위해서 정말 노력했던 검사였습니다.

-검사로서 기억나는 수사 사건은?

▲저는 2006년도에 제가 일심회 간첩 사건을 수사했어요. 당시 386 운동권 세력들이 민주노동당을 친북 정당화하려고 했던 간첩단 사건을 수사해서 해결했고, 2008년도에는 남북 공동선언 실천 연대라고 이적 단체 사건 수사를 해서 이적 단체 판결에 성공했어요. 남북 공동선언 실천 연대는 8년 동안 정부 보조금을 받은 단체예요. 그 두 사건을 맡으면서 저는 자유민주의 체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꼈어요. 북한에서 내려온 지령대로 하는 걸 내가 봤거든요. 공안 검사가 아니면 경험해 보지 못했을 사건이죠.

또 하나는 2016년도의 폭스바겐 디젤 게이트 사건이에요. 제가 수사 검사로서 대한민국의 국가대표로서 디젤 게이트 사건을 수사했어요. 독일 폭스바겐사 본사 임원이 한국에 와서 디젤 게이트 때문에 사과도 했어요. 그리고 폭스바겐 소유주 27만 명이 1인당 100만 원씩 쿠폰을 받았어요. 100만 원씩 27만 대면 무려 2,700억원이에요. 그리고 제가 정확하게 기억 못하겠는데 한 700~800억 정도의 과징금도 최초로 부여된 걸로 알고 있어요. 검사 3명이 수사를 했는데 정말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이 디젤 게이트 사건을 전 세계에 제일 처음 밝혀낸 거죠. 수사를 통해 문제가 있다는 것을. 국가대표로서 국익을 지킨 검사라는 자부심이 있어요.

그리고 이재명 지사를 성남지청 차장 시절에 기소를 했어요. 그때 알았어요. 문재인 정부 시절에 이 사건 수사해서 내가 기소를 하게 되면 검사장으로 승진하지 못할 거라는 것을. 그러나 각오하고 수사를 했어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사실 승진을 못 했고 그거 수사 내가 그때 성남지역 차장으로 안 갔으면 어쩌면 검사장으로 지금도 아마 검사장하고 있고 고검장이 돼 있을 수도 있겠죠.

그럼 어쩌면 여기에 이 자리에 있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소신껏 수사했죠.

그런 검사가 왜 나쁜 거냐고요. 그렇게 국가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고 국익을 지키고 그다음에 소신껏 자기 승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했고, 특별히 20년 검사 생활 중에서 10년을 통일 한국을 준비해 왔던 검사였고, 그리고 가슴이 아프고 서로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회복시켜주던 검사였는데 그것이 뭐가 나쁘냐고요? 왜 검사라는 이름으로 다 도매금으로 넘어가냐고요?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입니까?

▲ 두 사람이 있습니다. 우선 월리엄 윌버포스입니다. 노예 해방을 위해 삶을 바친 인물이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으로 실천한 인물입니다. 그의 사명감과 인간 존중 사상은 제 삶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습니다. 소명의식이라고 할까요? 또 다른 한 사람은 소설 <<불씨>>의 실존 인물인 우에스키 요잔입니다. 권위의식을 내려 놓는 리더십으로 스스로 불씨가 되어 쇠락해가던 자신의 성(城)을 부활시켰습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과천시를 위해서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일은 무엇인지, 그리고 중요한 일 세 가지를 열거해 주십시오.

▲ 첫 번째는 교통 같아요. 지금 2단지, 3단지, 6단지, 7단지 그다음에 지금 4, 5단지가 재건축이 되고 나면 의왕과 안양 쪽에서 넘어오는 차량들로 인한 교통 정체가 과천을 완전히 매연 공장으로 만들 것 같아요. 그래서 서울로 뚫릴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이수 과천 지금 터널이 2025년부터 이제 뚫리잖아요. 5년 공사하면 어떻게든 동작으로 가는 길은 열리겠죠.

그 다음에는 관악이나 신림 쪽에서 청사 유휴지 쪽으로 오는 복합 터널 터널이 하나 더 있으면 좋겠어요. 의왕과 과천의 차량들을 소화할 수 있는 서울과의 연결 통로가 될 수 있겠다고 봅니다. 도로를 제대로 내지 않은 상태로 현재의 교통 인프라 속에서 재건축 재개발하면 과천이 과연 이 경마장과 또 지정타에 있는 기업체들만으로 앞으로 자족 도시가 될 수 있을지 이걸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물론 종합병원 유치도 과천시민들의 이제 숙원 사업이긴 하죠. 3기 신도시 안에 부지가 확보돼 있으니 지금 종합병원 유치는 예정대로 유치가 된다고 봐야겠죠. 문제는 어떤 병원이 들어오느냐가 문제인데 그래도 가장 메이저급 병원을 들어오도록 유치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곳에서 먹거리를 창출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경마장은 그럼 계속 존속될 것인가 이런 것도 고민을 해요. 그래서 과천에 남아 있는 땅이 별로 없지 않습니까? 나중에 정부 차원에서 경마장 이전이 논의될 때 또 우리가 먼저 논의를 추진할 수도 있죠. 헬스바이오 첨단산업단지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 구상 단계라 아직 발표하기는 조금 이르지만 헬스바이오 첨단 산업단지를 만들어서 과천에 미래 먹거리 50년 100년 뒤에 미래 먹거리 만들어야 되겠다고 생각해요.

그 다음엔 문화입니다. 신계용 시장님이 지금 한예종 유치를 얘기하고 있는데 저는 한예종 유치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고 거기에 더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동 답교 놀이, 나무꾼 놀이 그다음에 또 줄타기 등이 과천이 가지고 있는 좀 독특한 문화를 어떻게 상업적으로 연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상설 공연장과 전수관이 같은 공간 안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공간에서 1년에 한두 번 또는 서너 번 하는 그런 공연이 아니라 주 1회 정도는 공연이 열려서 경기도권 또는 수도권 심지어 외국에 있는 분들까지도 여기에 와서 한국의 전통 문화를 볼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어주면 좋겠다. 그래야 상업하고 연결이 되지 않습니까? 거기에 그냥 공연뿐만 아니라 우리의 전통 먹거리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을 5일장 내지는 7일장 형태로 열고, 여기에 숙박시설까지 겸해지는 그런 걸 하면 첨단산업과 문화 산업이 이렇게 서로 양대축으로 갈 수 있는 도시가 되어야 합니다. 장소는 좀 고민하고 있어요. 지하철도 고려해야 될 것 같고, 부지도 고려를 해야 겠죠. 안양 의왕 과천의 어떤 접경 지역에 그걸 만들 건지 좀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일단 경마공원 쪽은 헬스 바이오 첨단산업 쪽으로 가고 문화는 조금 다른 공간으로 지금 생각을 하고 있어요. 아직 완벽한 구상이 끝난 건 아니지만 그동안 지금까지 과천이 베드타운 역할만 많이 해왔지 정부청사 빠져버린 상황에서 그런 공간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요. 독일 뮌헨 같은 경우에는 옥토버 축제 하나 가지고 전 세계에 몇 백만 명이 몰려오지 않습니까? 줄타기가 상설적으로 공연이 되고 나무꾼 놀이라든지 무동 답교 놀이라든지 우리 전통 문화들이 충분히 어필할 수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지금 말씀드린 건 구상단계이지요.

그리고 교육에 대해 정말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 학부모님들 교육 문제 지적을 많이 하고 계시죠. 제 큰 아이도 지방 학교를 나왔어요. 공주 한일고예요. 문원중을 나온 둘째는 엄마를 떠나기 싫어서 외고를 가고 셋째도 지금 중3인데 굉장히 고민이 많아요. 큰 형이 나온 한일고를 갈까, 용인외고를 갈까 등등. 학원에선 공부 잘 하니 과천에서 일반고를 가라고 하는 분도 있고요. 그래서 여러 가지 조언들을 하는데 과천에 있는 학부모들이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 같거든요.

학부모들이 중학교 정도 단계에서 벌써 막 이사를 생각하잖아요. 좋은 과천에 살려고 왔는데 여기서 계속 살 수 있으려면 일단 교육 문제가 해결돼야 하거든요. 교육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이거 굉장히 제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예요. 지금 임태희 교육감님과 이런 문제를 한번 당선이 되고 나면 한번 논의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과천이 지금 지정타, 구도심, 과천지구 이렇게 세 덩어리로 나뉘어버렸잖아요. 시민들은 쇼핑몰과 영화관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죠. 사실 인구 구조가 사실 안 맞지만 3기 신도시 들어와 15만 명이 되면 달라지지 않을까요? 중심상가 활성화를 위해서도 고민해야 하고요.

-총선 공약을 간단히 설명해주십시오.

▲ 현재 5호 공약까지 나와 있는데 그중 과천시와 관련된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1호 공약은 위례-과천선' 철도 노선의 의왕 초평지구까지 연장입니다. 이 계획은 기존 노선을 의왕까지 확장하는 것입니다. 여기엔 주암역, 문원역은 물론, 원문역, 갈현역을 추가해 지정타 지역 주민의 교통편의 도모하는 구상입니다. 큰 흐름으로 보면 인덕원-동탄선, 월곶-판교선, 지하철 1·4호선, GTX-C와 같은 주요 철도노선과 연결되는 광범위한 교통망을 구축하는 구상과도 연계됩니다.

두 번째 공약은 신생아중환자실 및 소아응급실이 포함된 상급종합병원을 유치하는 겁니다. .

세 번째 공약은 과천시 지식정보타운 내에 사계절 이용 가능한 가족형 물놀이장, 워터파크를 건립하는 구상입니다. 이 워터파크는 과천시 자원정화센터(소각장)의 현대화 계획과 연계되어, 폐열을 활용하여 지역 주민들의 편의 증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과천시의 새로운 명소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발표할 계획입니다.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공약을 발표하는 최기식 후보
공약을 발표하는 최기식 후보

 

-구 도심 특히 중심상가에 대해선 어떤 구상을 갖고 계신가요?

▲ 고민하고 있는데 지금 여기 지금 그레이스 호텔도 지어지고 4, 5단지 다 만들어지고 나면 별양동 상가가 굉장히 이 도시에 맞지 않는 그런 낙후된 곳이잖아요.

-제일상가와 새서울 상가를 합쳐서 개발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지하에 주차장 크게 만들 수 있고요. 행정력이 많이 필요하겠죠.

▲ 그렇습니다. 가운데를 원형으로 설계해서 가운데엔 시민들이 서로 모여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이렇게 몇 층을 올려서 웬만한 것들은 다 여기서 원스톱으로 다 해결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걸 구상하고 있어요.

그리고 과천이 지정타, 구도심, 문원동, 3기 신도시 이렇게 네 덩어리로 구분돼 있는 도시라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천 외곽도로를 덮어 씌워서 그 위에 잔디를 깐다든지, 예쁘게 공원을 만든다든지, 아니면 밑에 지하를 파서 그냥 완전히 위를 깔끔하게 그냥 완전히 여기 그 위에 건물도 지을 수도 있겠죠. 공원화시켜서 완전히 과천을 더 확대시키는 거죠.

이런 것을 하려면 비용과 또 행정력 모두 엄청나야 하는데 제가 말한 것들이 10년이든 20년이든 그렇게 이뤄진다면 과천은 진짜 명품 도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마어마한 프로젝트죠.

어느 누구도 시도하기도 힘들고 추진하기도 힘든 거죠. 하지만 과천에 대한 이러한 마스터 플랜이 없으면 어디 문제가 생기면 땜질하는 거랑 똑같은 거죠. 그렇게 되면 과천은 미래가 없다는 거죠.

-과천시가 전원도시 또는 행정도시로 시작했다가 지금 최근에는 미래 자족도시로 돼 있는데 앞으로 어떤 도시가 되는 게 개인적으로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시나요?

▲ 이미 말씀을 드렸는데 과천 시장님이 지금 추구하고 있는 게 문화도시죠.

행정도시는 어차피 지금 끝났고 정부 부처는 지금 아마 법무부 하나만 남아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방통위 등 위원회들이 들어와 있죠. 그래서 지금 30년 넘은 저 건물을 어떻게 그냥 쓰면서 그냥 갈 건지, 한 40년 정도 지나면 국가가 필요한 행정타운을 짓는다면 나머지 공간들은 또 다른 과천 발전을 위한 공간을 써야 하는데 행정과 문화와 첨단 산업 이것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가 돼야 해요. 그래야만 우리 미래가 있다는 거죠. 그래야 우리가 가고 싶은 도시가 될 수 있고, 경기도와 또 수도권에 있는 외국인들조차도 여기 와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그런 도시 지금 그게 명품 도시죠.

문화와 산업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도시가 명품 도시죠. 그게 일류 도시고요.

-행정력도 많이 필요하고 중앙정부의 협조도 있어야 할 것 같네요.

▲ 국회의원과 시장이 따로 놀아선 안돼요. 이제 중앙과 국회와 지방자치단체가 한 팀이 돼서 딱 통로가 되면 뭐가 할 수 있어요. 지금 일단 남아 있는 대통령 임기가 3년이잖아요. 그렇죠 시장님들은 2년 남았는데 재선을 하게 되면 6년이고, 대통령이 한 번 더 국힘당이 가져오게 되면 8년이잖아요. 그리고 제가 만약에 당선돼서 재선을 하게 되면 8년이잖아요. 그럼 8년, 8년, 6년이 있어야 뭔가 과천을 새롭게 디자인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물론 다음 대통령과 단체장을 시켜서 끌고 나갈 지금 절호의 타이밍이 되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한다는 거죠.

-조금 소프트한 질문인데 과천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인가요?

▲ 정치를 하기 전에 아내와 거의 매주 다녔던 곳은 야생화 단지예요. 야생화 단지를 돌고 그 뒤로 산책도 한번 한 뒤 내려오는 그 길이 과천에서 제가 제일 쉼을 많이 얻는 곳이었던 것 같아요.

거기를 좀 개발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쪽 위에 캠핑장을 하자는 얘기도 있고 그 밤나무 단지 개발하자는 얘기들도 있지요. 그건 이제 결국 청소년들을 위한 건데 또 바베큐 할 수 있는 데도 만들어 달라는 얘기도 있었어요.

여유 있는 삶이 중요하잖아요? 그러니까 멀리 캠핑장 가지 않고, 대공원 캠핑장 줄서서 신청하고 기다리는 거 말고, 과천 시민들만 이용할 수 있는 캠핑장이죠. 독일에선 다 자기 차에 그릴을 싣고 다녀요. 숯도 파니까 그릴 가지고 가서 불 피우고 고기만 정육점에서 사서 가족들이랑 먹는 거예요.

의왕시에 가면 바라산 자연휴양림이 있죠. 사실 여건이 과천이 더 좋은데 아쉬워요. 캠핑장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청사 유휴지를 개방하니까 청년들, 신혼부부들이 또 부모님들 모시고 나와서 ‘시장님 이거 좀 자주 열어주세요’라고 말하시더라고요. 밤나무골이나 저런 데 어떤 새로운 공간을 만들지 못한다면 청사 유휴지를 좀 상시적으로 열면 좋잖아요.

야생화 단지 위에 밤나무 단지 가보면 실제 완전히 쓸모없이 그냥 방치되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 공간들이 활용해야 이제 과천시민들이 주말에 삶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죠.

-국회의원에 출마하셨으니까 이제 과천 얘기 말고 이제 대한민국 얘기를 해볼까요? 지금 대한민국 국회의원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출마 기자회견하면서도 얘기했는데 저는 네 가지 가치를 제 정치의 가치로 내세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유입니다. 어떻게 됐든 평등이 더 우선시되고 약간 어떤 제도나 이런 정책들이 사회주의화돼 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유가 더 중시가 되는 자유민주의 체제의 기본적인 가치 그것이 유지되고 또 보존돼야 한다는 게 제 첫 번째 어떤 가치입니다.

두 번째는 미래입니다. 너무 현안에 집중돼서 그때그때 땜질씩 하는 그런 행정과 정치가 아닌 적어도 50년, 100년 뒤에 대한민국을 바라보고 하는 정치 그거는 연금이나 노동이나 교육이나 이런 것들이 다 미래와 관련된 것이지 않습니까?

그 다음엔 통합입니다. 우리가 너무 찢겨 있잖아요. 계층, 세대, 빈부, 지역 간 이 나라가 쪼개져 있거든요. 이건 정치인들이 잘못한 거든요. 정치에 이것들을 이용해 왔단 말이죠. 지역 정서를 이용해 왔고, 의사와 간호사, 검찰 수사관과 경찰, 검사와 경찰, 남자와 여성, 빈자와 부자 모든 것들을 쪼개 다수의 표를 얻어 정치를 하려고 했단 말이죠. 이런 정치가 아닌 정말 같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통합하는 정치 이런 정치를 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은 회복입니다. 회복은 뭐냐 하면 정말로 복지를 한다고 하지만 우리나라 자살률 1위잖아요. 먹고 사는 문제를 떠난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어떤 회복이 안 되는 거죠. 더 이상 내가 살아갈 힘이 없는 거 여기에 대해서 왜 이렇게 풍요로운 사회를 살면서 자살률이 이렇게 높냐는 거죠. 그래서 가난하고 지치고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회복되는 나라 그 네 가지 가치를 지향하고 싶습니다.

궁극적으로 이제 이런 정치를 지향하면서 정말 저의 시대적 소명은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통일 한국을 잘 준비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을 이루고 북한 주민과 함께 어우러져서 잘 살아갈 수 있는 나라, 그래서 그 통일된 부강한 통일 대한민국이 세계에 가난하고 소외된 민족과 나라를 진정으로 섬길 수 있는 그런 나라 그래서 헬조선이 아닌 정말로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내가 이 땅 통일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내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것이 너무나 자랑스러운 나라 참으로 부강한 나라 그걸 만드는 데 제 어떤 정치의 여정을 바치고 싶다는 생각으로 여기 뛰어든 거죠.

-마지막 답변하신 이 시대적 소명 부분은 국회의원이 돼서 의정활동을 여기에 주력하겠다라는 질문으로 대신해도 되겠죠?

▲ 기본적으로 통일에 대한 관심이지만 정치 개혁도 이루고 싶어요. 사실은 지금 국회의원들 너무 특권이 많잖아요. 특권 내려놓기 하고 싶어요. 이번에 공천 신청하면서 다 했거든요. 세비 중간에 문제 생기면 금고 이상 형 받으면 세비 반납하는 거, 불체포 특권 포기, 국회의원 정수 줄이겠다는 건 한동훈 비대위원장 얘기였고 그다음에 또 뭐야 그 5가지가 있더라고요. 기본적으로 동의를 하고 그건 정치 개혁을 위한 하나의 그냥 수단이고 진짜 이런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그런 정치입니다.

그리고 지방 소멸 문제에 되게 관심이 많아요. 지방 소멸 수도권 집중화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아주 많아요. 이 지방 소멸 문제가 사실은 교육에서 출발하거든요. 스카이 중심으로 운영되는 우리나라 대학 교육 제도가 결국은 지방 소멸을 가져 왔고 주택 문제를 가져 왔다는 거죠.

지방 소멸, 통일 준비 두 가지를 시대적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통일은 어떻게 보면 지금 당장의 과제일 수도 있지만 먼 미래의 과제일 수도 있지요. 지방 소멸을 해결하려면 지방 소멸의 기초가 되는 교육 문제, 스카이 대학, 인서울 중심의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할 수가 없는데 사실 너무 거대한 담론이란 말이죠. 이게 중앙집권 국가에서 나타나는 폐해거든요. 독일의 경우 16개 연방으로 돼 있는데 베를린에서 가장 좋은 대학인 홈볼트 대학, 노벨상을 30명 이상 배출한 홈볼트 대학 법과대학을 나와서 변호사를 한다 해도 바이에른 주 뮌헨에 가면 훔볼트 대학 법과대학 출신이라는 것을 내세울 수 없거든요. 거기선 뮌헨 대학 나온 사람이 최고라는 거죠. 각 주에 2개씩만 있어도 32개의 최고의 국립 대학이 있는 거예요. 누구나 자신이 최고의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스카이나 인서울이 아니면 패배했다고 생각하잖아요. 지방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저처럼 밀양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그냥 부산대나 경북대를 가서 거기서 틀을 잡고 거기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서 부산과 경북과 경남 내 고향을 발전시키는 일을 해야만 지방이 소멸하지 않고 골고루 발전하는 거든요.

지금 우리의 이 지방분권 지방자치제도 정도만으로는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어렵다는 거죠. 문재인 정부 때도 얘기했고, 노무현 정부도 얘기했고 강력한 지방분권 얘기했거든요. 그러나 연방 국가에 준하는 지방분권을 하겠다고 했지만 사실은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지도 못했고 지방에 그 권한을 내려놓지도 못했거든요.

이것이 저는 우리나라 향후 정치 개혁이라든지 어떤 우리나라의 어떤 미래 50년, 100년을 준비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테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과연 이것을 이 생각에 동참하고 이것을 따라와 줄 사람이 정말 몇 명이나 될지 어려운 문제이지만 이 문제를 반드시 풀어야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거죠.

대학 때문에 전부 서열이 매겨지고 내 인생의 어떤 내 인생에 실패했다고 좌절감을 느끼고 친구들하고 사이에 열등감을 느끼고 거기서부터 출발이 문제가 있다는 거지 그것은 어떻게 보면 아까 자살률하고도 연결이 되는 거죠.

제가 좀 이해가 안 되는 게 지방 소멸의 해결책으로 스카이 대학을 지방으로 옮긴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고 봐요. 부산대 경북대가 그 지역에서 최고 대학이 돼야 합니다. 그러려면 지금 중앙집권 국가를 유지해서는 절대 해결이 안 돼요. 하나의 경상주가 생겨야 되는 거예요.하나의 국가처럼 운영이 돼어야만 내가 부산대 경북대 경상도에 태어난 사람 부산대 경북대 가는 것만으로도 최고가 되는 거고 굳이 서울에 안 와도 되는 거죠.

지방 대학을 살린다는 거는 그냥 그렇게 살릴 수 있는 게 아니고 하나의 국가처럼 경상도를 운용하게끔 국가의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거예요. 완전한 지방분권이죠. 하나의 연방 국가 모델입니다.

대학도 독일처럼 30%만 대학에 가자 이거죠. 안 받아주더라도 교육 시스템을 그렇게 바꿔야 지금 대학 지금 정원 줄어들잖아요. 지방 사립대학부터 다 죽거든요. 결국은 나중에 살아남는 국립대학만 살아남게 되고요. 이 부분을 해결하지 못한 채 통일이 된다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북한에 있는 젊은이들이 전부 다 서울로 올 거예요. 그러면 저기 함경도 아버지 저쪽 평안북도 저쪽은 전부 다 빈터가 되는 거예요. 노인들만 사는 곳이 될 거예요. 이런 고민들을 하고 있고 제가 서울대 로스쿨 학생들이 만드는 ‘법학 평론’이라고 교내 잡지에 ‘통일한국의 바람직한 통치 구조 모색’이라고 한 70쪽짜리 논문을 쓴 게 있어요. 거기에 보면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나름대로 제가 분석해서 쓴 논문이 있습니다.

-후보께서 국회의원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과천시민 입장에서 한번 설명을 해 주십시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이 힘 있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공조를 할 수 있는, 힘 있는 후보다. 대통령 정부와 현재의 지방자치단체장을 연결시킬 수 있는 통로, 제대로 된 통로가 막힘이 없는 통로가 될 수 있는, 힘 있는 후보다.

그리고 제가 이 과천 의왕 지역에서 18년간을 살았잖아요. 세 아이를 키우면서 누구보다도 이 지역의 상황을 교육이라든지 문화라든지 삶의 여유라든지 이런 부분들을 제가 호흡하고 느끼고 시민들과 같이 살아왔잖아요. 저는 당선이 안 된다고 해도 과천을 떠날 생각은 없단 말이죠. 영원히 제가 살기 위해서 들어온 도시란 말이죠. 이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힘 있는 후보, 두 번째는 시민들과 18년간 호흡해온 후보다.

-가족 관계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 아내와의 사이에 세 아들이 있습니다. 대학생, 고2, 중3입니다. 집 사람은 그림을 전공했는데 이화여대 출강중입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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